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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wohinee 2025. 3. 16. 22:37

평화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제목과 상반되게 책의 내용은 폭력을 담고 있다. 철저히 고요한 폭력. 최근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뉴스와 어느 지점에서 맞닿아 있는 탓에 읽으면서 생리적인 불쾌함이 올라왔다. 그러나 여성 화자의 입을 빌려 나온 이야기였기에, 그 불쾌함은 작가가 의도한 바로 읽혔다. 여성 예술가들이 남성중심적 권력 구조 사회에서 불결하게 다루어지는 소재들을 본인의 작업에 적극 편입하고 여성인 스스로를 가장 불온하고 천박하고 외설적인 위치에 둠으로서 기존 구조를 도리어 전복시켜버리는 방식을 좋아한다. 이 책도 그런 방식을 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와 어른, 우정과 사랑, 동경과 멸시, 진심과 흑심.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결국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한없이 배회하는 청소년의 시기를 우리는 언젠가 모두 지나왔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땐 마냥 경박하고 칠칠맞기 짝이 없는 언행들을 우리는 언젠가 모두 저질러왔다. 본인이 범죄의 피해자가 된 지도 모른 채 낭창하게 굴어대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발랑 까졌다든가 멍청하다든가 하는 감상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치치새가 사는 숲인 동시에 꽁치 김치 조림이기도 한 치치림. 단어에 숨겨진 이중적인 의미를 깨달았을 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 치치림이라는 단어가 결국은 ’무언가‘이면서도 ’무언가가 아닌 무언가‘인 주인공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되었다. 끔찍한 기억이 감히 나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반짝반짝 예쁘게 포장하는 이야기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담고 있는 그루밍성범죄라는 소재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역겨움을 자아내다 보니 읽는 게 좀 힘들긴 했다…)